“산들바람 일기- 시골집 안방 바닥을 함께 바르던 하루”

부제: 10년만의 새로움

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이었다.

산등성이 위로 햇살이 막 번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약속한 대로 삼막골 마당에 하나둘 모였다.

처남 부부와 귀남이 , 처제부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서로 얼굴을 보며

“왔어?” 하고 웃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꽤 많았다.

안방 바닥에 초배지를 바르고, 콩장판 바르고, 문은 떼어 닦고,

창호지까지 바르는 큰 작업.

하지만 어쩐지 마음은 하나도 복잡하지 않았다.

여럿이 하면 일은 일 같지 않으니까.

🌿 초배지부터 콩장판까지, 천천히 바르는 시간

먼저 바닥을 깨끗하게 쓸었다.

티끌 하나 없이 정리된 바닥은

마치 새로 숨 쉬기 시작한 것처럼 고요했다.

주인은 밀가루풀을 차분히 저었고,

초배지를 길게 펼쳤다.

처남은 중간에서 종이가 구겨지지 않게 살살 눌러주었다.

“야, 천천히. 종이도 사람처럼 숨이 필요해.”

동서가 슬쩍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느리게 움직였다.

종이가 바닥에 사르르 붙어가던 순간,

방 안 공기는 조금 더 따뜻해 보였다.

  1. 초배지가 마른 뒤
  2. 미리 물에 담궈두어 부드러워진 콩장판
  3. 콩장판을 바닥 방향에 맞춰 조심스레 펼치고
  4. 다시 한 번 밀대로 공기를 빼듯 천천히 눌러준다

콩장판은 바닥의 온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드럽게 올라오게 한다.

옻 코팅제를 얇게 바르자

콩장판이 다시 살아났다.

스스로 숨을 되찾는 나무의 얼굴 같았다.

발바닥으로 다시 밟고 싶어지는 바닥.

그 온기를 알고 싶어지는 색.

🚪 문 떼고 닦고, 창호지 새로 바르는 일

점심 전에는 문짝을 떼어 마당에 눕혔다.

햇빛에 오래 있었던 나무결이

햇살 아래 다시 결을 드러냈다.

문틀과 문짝의 세월의 아픔을 치료한 후에

나무가 다시 깊은 숨을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호지 바르기.

처제와 내자는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창호지를 부드럽게 눌렀다.

얇고 하얀 종이 안으로

햇빛이 은근히 스며들었고 문이 제위치를 찾았을 때

방은 아주 오래된 집이면서도

다시 새로운 집이 되어가고 있었다.

☕ 점심과 커피, 그리고 잠깐의 쉼

점심은 주인장의 마음만큼 푸짐했다.

두부, 가자미조림, 명란무침, 배추된장국,

북어채조림김치, 밥.

“이게 제일 맛있지.”

누구랄 것도 없이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한참을 말도 없이 밥만 먹었다.

이상하게 이런 날은 말보다 씹는 소리가 더 정겹다.

밥 먹고 나서

마당 평상에 모여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 돌렸다.

입안에 감도는 구수함과

손끝에 스며드는 초겨울 햇살.

그리고 그 순간의 조용한 평화.

그게 다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 마무리 작업, 그리고 저녁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콩장판의 가장자리와 결을 다듬고

바람이 지나갈 틈을 살폈다.

일이 다 끝났을 때

방은 조용하고 따뜻했고,

내년의 사계절을 준비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마당에 모여 고기를 구웠다.

연기가 하늘로 천천히 올라가고

불꽃이 노르스름하게 흔들릴 때

“오늘… 좋았다.”

누군가 중얼거렸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 그날

우리는 바닥 하나를 고친 것이 아니라,

이 집에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도 따뜻한 온도를 조금씩 묻혔다.

집은 결국 사람이 고치는 것이고

따뜻함은 함께 있어야 생긴다.

그렇게

시골집의 하루가

조용하지만 꽉 찬 채로

천천히 저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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