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억 1
어린 시절의 아버지 어린 시절, 시골 아이였던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늘 기계와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작은 방앗간을 운영하셨다. 그때는 마을에서도 밀농사, 보리농사를 많이 지었다. 수확한 밀을 빻아 밀가루를 만들고, 벼를 찧어 쌀을 만들고, 보리도 먹을 수 있도록 도정했다. 지금처럼 모든 과정이 정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방앗간에서 갓 빻아 나온 밀가루도 지금…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예전 어르신들이 “장례를 치르고 나면 그때부터 가슴이 아프다.”고 하시던 말씀이 이제야 내 몸에도 찾아왔다. 빈소와 화장터에서는 정신없이 일을 치르느라 미처 느끼지 못했던 슬픔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꺼번에 밀려왔다. 폐부를 찌르듯 깊고 묵직한 아픔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이틀 동안 사람들로 북적이던 빈소도, 위로의 말들도, 함께 나누던 추억의 이야기들도 모두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때부터…
여름은 풀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비가 한두 번만 내려도 며칠 사이 정원의 풍경이 달라질 만큼 풀이 무섭게 자란다. 다음 주에는 시골에 들어오지 못할 것 같아 토요일 아침과 저녁 시간을 나누어 예초 작업을 하기로 했다. 집 주변과 형님댁 둔덕을 둘러보니 어느새 풀들이 제법 자라 있었다. 전원생활을 오래 즐기려면 풀과 타협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풀을 모두 없애겠다는…
이번 주말은 혼자 시골집을 지키게 되었다. 내자가 여러 가지 반찬을 정성껏 만들어 놓고 갔지만, 혼자 있을 때는 이상하게도 밥상을 차리는 일이 귀찮게 느껴진다. 결국 냄비에 물을 올리고 라면 한 봉지를 꺼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스프를 넣고 면을 풀어 넣었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화구에서 옮기고, 김치 한 접시를 꺼내 간단히 한 끼를 해결했다. 젊었을 때는 라면…
몇 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노지 수국을 키우는 방법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춘천의 산골, 이른바 ‘춘베리아’라 불리는 이곳에서 수국 꽃을 피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노지 수국을 성공적으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첫째, 수국이 전년지 개화형인지 당년지 개화형인지 그 특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전년지에서 꽃이 피는 수국은 가지를 함부로 자르면 꽃을 볼…
긴 겨울이 지나고 가장 먼저 봄을 알려준 것은 생강나무꽃이었다. 아직 산기슭에는 찬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노란 생강나무꽃은 누구보다 먼저 피어나 봄의 시작을 알렸다. 그 뒤를 이어 동백꽃이 피었다. 춘베리아의 추운 겨울을 견디고 피어난 동백꽃이라 더 반가웠다. 남쪽 지방에서나 잘 자랄 것 같던 동백이 우리 정원에서도 꽃을 보여주니, 그 자체로 작은 기쁨이었다. 동백꽃이 지나고 앞뜰에는 분홍빛…
이리저리 바쁘게 정원을 돌보고, 푸성귀를 심고 가꾸며 새로운 정원 구상을 하느라 마음까지 분주한 요즘이다.정원을 다시 조금 손봐야겠다는 생각에 울타리 역할을 하는 쥐똥나무 아래를 들여다보니 어느새 잡풀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결국 하나 하나 손으로 풀을 뽑아냈다. 나무도 숨을 쉬어야 병 없이 건강하게 자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쥐똥나무의 숨통을 틔워주니 답답했던 마음까지 함께 시원해지는 듯했다. 지난 2월에는…
시골로 들어온 뒤 삽목한 수국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랐지만, 정작 꽃은 쉽게 볼 수 없었다.해마다 잎은 무성하게 자라고 덩치는 커졌지만 꽃봉오리는 보이지 않았다. 풍성한 초록만 남고 꽃은 피지 않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그 이유를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전년지 수국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수국은 종류에 따라 꽃이 피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수국은 올해 나온 가지에서 꽃을…
주말 아침[2026.5.16], 가방을 챙기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안전 장화를 신은 뒤 고사리를 뜯으러 산으로 향했다.햇볕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려고 모자와 수건으로 단단히 얼굴을 감싸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자외선의 무서움을 피부의 노화로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번에는 고사리만 뜯는 것이 아니라 많이 자란 풀도 제거하려고 예초기까지 메고 올라갔다.먼저 예초할 주변의 고사리를 뜯고, 그 다음 예초기를 돌려 무성하게…
목단이 고개를 숙인 뒤의 시골집은 또 다른 꽃들의 시간으로 채워진다.조용해진 듯했던 마당 곳곳에서 꽃들은 순서도 없이 불쑥불쑥 얼굴을 내민다. 하얀 샤스타 데이지는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빨간 양귀비는 뜨거운 색으로 시선을 붙잡는다.베트남 국수에 어울리는 고수는 소박한 매력으로 그 독특한 향기를 내뿜고 있고, 부처님의 머리를 닮았다는 불두화는 둥글고 묵직한 존재감으로 마당 한켠을 지킨다. 작지만 강한 향기를 가진…
봄비가 지나간 뒤의 산은 조용했다.벌나무를 심어 놓은 산자락 주변에는 오래전부터 고사리가 올라오는 작은 고사리밭이 있다. 올해 봄, 예초기를 이용해 작년에 남아 있던 큰 풀 흔적들과 넝쿨등을 정리했고, 톱으로 잡목들을 정리했는데, 그 덕분에 올해는 한결 수월하게 고사리를 뜯을 수 있었다. 비가 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고 날씨도 쌀쌀하여 고사리가 많이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역시 산에는…
올봄에는 작약과 토종작약, 구절초, 국화, 수레국화, 삽주, 끈끈이대나물, 기린초 등을 새로 심거나 자리를 옮겨 심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풀을 뽑고, 작은 변화 하나에도 마음을 쓰며 식물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하지만 정성을 들인다고 해서 모든 식물이 사람의 마음처럼 자라주는 것은 아니었다. 형님 밭으로 옮겨 심었던 작약들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태양볕을 견디지 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