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이야기
이번 주말은 혼자 시골집을 지키게 되었다. 내자가 여러 가지 반찬을 정성껏 만들어 놓고 갔지만, 혼자 있을 때는 이상하게도 밥상을 차리는 일이 귀찮게 느껴진다. 결국 냄비에 물을 올리고 라면 한 봉지를 꺼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스프를 넣고 면을 풀어 넣었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화구에서 옮기고, 김치 한 접시를 꺼내 간단히 한 끼를 해결했다. 젊었을 때는 라면 두 봉지는 기본으로 끓여 먹었는데, 이제는 라면 한 봉지에 식은밥 조금이면 충분하다. 그럴 때마다 나이 들어감을 실감하기도 하고,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렇게 한 끼를 먹고 나니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라면에 대한 기억이었다. 군대에서 한 달에 한 번 먹던 퉁퉁 불은 라면도 아니고, 여행길 보길도 해안가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끓여 먹던 라면도 아니었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라면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끓여 주던 라면이었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가끔 점심시간에 건빵을 나누어 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건빵 공급이 끊겼던 모양이다. 선생님께서는 동네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학생들을 위해 라면을 끓여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작은 급식이었다.
그때 먹었던 라면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조미료 맛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골 아이들에게 라면 스프의 감칠맛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평소에는 점심시간이 되면 집으로 뛰어가 밥을 먹고 오거나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곤 했지만, 학교에서 라면을 끓여 주는 날만큼은 달랐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교실 창문 사이로 바람을 타고 라면 냄새가 스며들었다. 그러면 수업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계만 바라보며 빨리 종이 울리기를 기다렸고, 머릿속에는 오직 라면 생각뿐이었다. 친구들과 줄을 서서 받아 든 뜨거운 그릇의 라면은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최고의 재료로 끓인 라면이 아니라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먹었던 라면일 것이다. 유년 시절의 배고픔과 기다림, 선생님의 사랑, 동네 아주머니의 정성,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웃음이 한데 어우러져 그 어떤 음식도 따라올 수 없는 맛을 만들어 냈다.
지금도 가끔 라면을 끓여 먹을 때면 그 시절 학교 운동장과 교실 창문 너머로 풍겨 오던 라면 냄새가 문득 떠오른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 맛만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내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언제나 어린 시절 학교에서 먹었던 그 한 그릇의 라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