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의 온기와 청평사의 가을
목요일 늦은 시간, 시골집에 들어갔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시골집은 언제나 푸근함을 안겨준다. 마치 아무 말 없이 자식을 품어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늦게 도착했는데도 고양이들이 돌담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 마리인지 세어보고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불러본다.
“양이야, 미래야, 코순아, 반이야, 미투야…….”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인지 한 마리, 두 마리 모습을 드러내며 모여든다. 세어보니 앞쪽에 다섯 마리, 뒤쪽에 세 마리다. 짐을 풀기도 전에 사료부터 챙겨주었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니 오늘은 제대로 먹지 못한 모양이다. 요즘 들어 가끔 모습을 보이던 칠복이는 보이지 않는다. 공주는 가끔씩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먹을 것을 아래로 내려준다. 우리 부부가 주말이면 빠짐없이 시골집에 들어오는 이유 중 하나도 이 아이들 때문이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어쩌면 유일하게 우리 부부를 기다리는 녀석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녀석들은 우리가 언제 오는지 알 리 없겠지만, 우리는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양이들을 챙긴 다음 해야 할 일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구들장을 데우는 데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 번 데워진 구들장은 온기가 오래간다. 무엇보다 그 따뜻함은 보일러의 온기와는 비교하기 어렵다. 따뜻하게 데워진 구들장에 몸을 누이고 잠을 자면 하루의 피로가 한결 쉽게 풀린다. 오랜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지난주 도끼로 쪼개어 마련해 둔 장작을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폈다. 바싹 마른 장작이라 불이 쉽게 붙었고, 아궁이 안으로 화기가 힘차게 들어갔다. 방에 들어오니 바닥이 너무 차가웠다. 우선 보일러를 돌려 냉기를 없애기로 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집 안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보일러를 끄고 이제 구들장이 데워지기를 기다린다.
우리 부부가 보일러를 설치하고도 굳이 아궁이를 없애지 않은 이유가 있다. 아궁이의 따뜻함은 단순히 방을 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작을 준비하고 불을 지피며, 구들장이 서서히 데워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과정까지도 우리에게는 작은 즐거움이다. 보일러가 주는 편리함도 좋지만 아궁이가 주는 온기는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데워주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가 아궁이를 고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청평사에 가보기로 했다. 청평사는 일 년에 두세 번, 많게는 네 번 정도 찾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가을에는 반드시 한 번쯤 들르는 곳이다. 집에서 멀지 않고, 한적한 산길을 걸으며 여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웅전과 극락전, 관음전 등에 들러 기도하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것도 청평사를 찾는 이유 중 하나다.
이번에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아저씨도 동행하셨다. 아저씨와 함께 청평사를 찾는 것은 일 년 만이다. 지난해에는 아저씨도 우리와 보조를 맞추며 산길을 걸으셨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한 해 사이 몸이 많이 약해지신 듯했다. 내자는 먼저 앞서가고, 나는 아저씨와 함께 천천히 걸었다. 아저씨의 걸음에 맞춰 쉬엄쉬엄 올라갔지만, 아저씨는 땀을 많이 흘리시며 힘들어하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은데, 사람의 몸에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남기는 모양이다. 지난해에는 함께 걸었던 길을 올해는 아저씨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오른다. 언젠가는 나 역시 누군가가 걸음을 맞춰주어야 하는 날이 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아저씨의 느려진 걸음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청평사에 도착하여 공양미를 마련하고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삼성각에 차례로 들러 기도를 올렸다. 늘 집에서도 기도를 하지만 절에서 드리는 기도는 어딘가 느낌이 다르다. 기도하는 마음은 같은데 장소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며 쌓아온 분위기 때문일까. 어쩌면 절이라는 공간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선입견일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떻든 조용히 합장하고 기도를 드리는 시간만큼은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기도를 마치고 내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어느새 연중행사처럼 되었다. 일 년 전 사진과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같은 장소, 비슷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지만 그 안에 담긴 우리는 해마다 조금씩 달라져 있다. 청평사는 아저씨에게도, 나에게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아저씨는 소양댐이 건설되기 전, 걸어서 청평사로 소풍을 오셨다고 한다. 나는 소양댐이 건설된 후 배를 타고 소풍을 왔었다.같은 청평사이고 같은 소풍이라는 말이지만, 그 속에 담긴 풍경과 기억은 서로 다르다. 내자와 함께 부처님오신날 어머니를 모시고 찾았던 추억도 이곳에 남아 있다.
지금은 지나가 버린 시간들이지만 청평사에 오면 그때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어린 시절의 소풍, 어머니와 함께했던 날, 그리고 해마다 내자와 찍는 사진까지. 청평사는 우리에게 단순히 산속에 자리한 절이 아니라 지나온 세월의 기억을 품고 있는 장소인지도 모르겠다. 절을 내려오는 길도 아저씨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아직 산에는 단풍이 충분히 들지 않았다. 기대했던 가을빛을 마음껏 보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푸르름 속에 조금씩 스며드는 단풍도 나름대로 아름다웠다. 여름의 흔적이 채 사라지지 않은 숲에 가을이 조심스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숲에서 내뿜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 시간. 생각해 보면 이런 시간이야말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시골집에서는 아궁이의 온기로 몸을 데우고, 청평사에서는 숲과 추억으로 마음을 데운 주말이었다.
세월은 사람의 걸음을 조금씩 느리게 만들지만, 함께 걸었던 길의 기억까지 지우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