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한 밤

밤을 수확하며…

지난주 삼막골에 가니 일손이 바빴다. 배추밭과 무밭에는 물을 주어야 했다. 목말라하는 배추의 목도 축여 주고, 잘 자라라고 무도 다독여야 했다. 가지와 오이, 호박도 더 늙기 전에 따야 하니 내자와 나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특히 가지와 호박은 우리 가족이 먹기에는 생산량이 많아 고민이었다. 처제 부부와 우리 부부의 손길과 땀이 들어간 채소들을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무료 나눔이었다. 춘천 집에 도착해 가지와 호박을 깨끗이 씻고 정리했다. 그리고 출력물 하나를 만들었다. “저희 부부가 시골에서 무공해로 농사지은 채소입니다. 드시고 싶은 분은 가져가셔요.” 그날 밤 가지와 호박을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아 출력물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놓아두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면서 엘리베이터를 살펴보니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 주민분들이 하나씩 가져다 드신 모양이다. 버리지 않고 이웃과 나눌 수 있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흘린 땀으로 자란 채소가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 맛있는 반찬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도 흐뭇했다.

일요일 오전에는 형님 댁 마당의 풀을 정리했다. 그동안 보도 블록 사이와 위에 쌓여 있던 흙과 풀을 예초기로 많이 걷어내고, 블로워를 이용해 깨끗하게 청소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몸이 힘든 것의 몇 배나 더 개운했다. 늘 ‘저걸 청소해야 하는데…’ 하는 숙제를 안고 학교에 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밀린 숙제를 다 해놓고 당당하게 학교로 향하는 아이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

오후에는 밤나무 세 그루의 밤을 수확했다. 먼저 형님 댁 둔덕에 심어놓은 밤나무부터 시작했다. 작년에는 이 밤나무에서 거의 밤을 구경하지 못했다. 둔덕의 경사가 심해서 밤송이가 아람 벌어지면 밤알이 길가로 굴러 내려갔고, 오가는 동네 분들이 주워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밤나무 아래의 풀을 깎지 않았더니 떨어진 밤송이들이 풀에 걸려 있었다. 나머지는 아직 밤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내자와 함께 떨어진 밤송이를 주워 길가에서 밤을 꺼냈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밤송이는 장대로 떨구어 수확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있었다 이 밤나무는 다른 밤나무들과 비슷하게 자랐는데 밤송이가 유난히 작았다. ‘품종이 다른 나무인가 보다. 밤송이가 작으니 밤알도 작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밤송이를 까보았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작은 밤송이 속에서 나온 밤알이 다른 나무의 밤알과 크기가 비슷했다. 어떤 것은 오히려 제법 크기까지 했다. 나머지 두 그루의 밤도 수확했다. 손이 닿는 곳은 손으로 따고 높은 곳에 달린 것은 장대를 이용해 떨어뜨렸다. 두 나무의 밤송이는 모두 컸다. 그런데 한 나무에서는 튼실하고 큰 밤알이 나왔고, 다른 나무에서는 그보다 작은 밤알이 나왔다. 밤송이의 크기와 그 속에 들어 있는 밤알의 크기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확한 밤은 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그 뒤의 작업은 내자가 맡았다. 밤을 수돗물에 깨끗이 씻고 소금을 넣은 물에 담가두었다. 몇 시간 뒤 물에서 건져 깨끗한 비닐에 싸서 김치냉장고에 보관했다. 소금물에 담가두는 것은 밤벌레의 피해를 줄이고 밤을 좀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밤 수확을 모두 끝내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인생도 밤송이와 밤알 같지 않을까. 우리는 밤송이가 크면 그 안에 든 밤알도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볼 때도 비슷하지 않을까. 겉모습이 보기 좋으면 그 사람의 내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겉모습은 번듯한데 행동이 그렇지 못하면 ‘허우대는 멀쩡한데…’라고 말한다. 반대로 겉으로는 작고 볼품없어 보여도 속이 야무지고 단단한 사람을 만나면 다시 한번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작은 밤송이 속에서 예상외로 크고 튼실한 밤알이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날 밤송이를 까면서 내가 얼마나 쉽게 겉을 보고 속을 짐작하며 살아왔는지를 생각했다.

큰 밤송이 속에 반드시 큰 밤알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밤송이 속에 반드시 작은 밤알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직접 까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외모나 옷차림, 말투나 첫인상만으로 그 사람의 속까지 짐작할 수는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밤송이’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 어떤 밤알이 들어 있는지는 시간을 두고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밤송이만 보고 밤알을 짐작하지 말자.

올가을 삼막골에서 밤을 얻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귀한 것을 하나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바라볼 때 겉모습에 현혹되어 속까지 미리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작은 깨달음이다. 올해도 밤나무는 말없이 밤송이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그 밤송이 하나가 나에게 사람을 바라보는 법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