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를 수리하는 이미지

아버지의 기억 1

어린 시절의 아버지

어린 시절, 시골 아이였던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늘 기계와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작은 방앗간을 운영하셨다. 그때는 마을에서도 밀농사, 보리농사를 많이 지었다. 수확한 밀을 빻아 밀가루를 만들고, 벼를 찧어 쌀을 만들고, 보리도 먹을 수 있도록 도정했다.

지금처럼 모든 과정이 정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방앗간에서 갓 빻아 나온 밀가루도 지금 우리가 먹는 밀가루처럼 하얗지 않았다. 조금 누런빛을 띠었는데, 그 밀가루로 빵을 만들거나 음식을 해 먹으면 유난히 구수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곡식의 껍질과 영양분을 지금처럼 말끔하게 벗겨내지 않았으니, 건강에는 오히려 지금의 하얀 밀가루보다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방앗간의 중심에는 커다란 원동기가 있었다.

어린 내 눈에는 그 원동기가 무척이나 크게 보였다. 시동을 거는 일도 쉽지 않았다. 마을에서 힘 좀 쓴다는 어른이나 청년들이 달라붙어 손으로 힘껏 돌려야 겨우 시동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힘들게 원동기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방앗간도 함께 움직였다.

하지만 원동기는 자주 말썽을 부렸다.

기계가 고장 나면 아버지는 늦은 시간까지 원동기와 씨름하셨다. 어떻게든 고쳐야 했다. 원동기가 멈추면 방앗간도 멈추었고, 방앗간이 멈추면 주민들이 맡겨 놓은 곡식을 제때 찧거나 빻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정미나 제분의 대가로 돈 대신 곡식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 기계가 고장 나 일이 밀리면 아버지가 받아야 할 품삯도 늦어졌다. 아버지에게 원동기를 고치는 일은 단순히 기계를 수리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화전민 정리가 이루어지면서 마을의 규모가 작아졌다. 사람들이 떠나고 방앗간을 찾는 일거리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아버지는 방앗간의 규모를 줄이고, 커다란 원동기 대신 작은 원동기를 들여놓으셨다.

그런데 작은 원동기는 더 자주 고장이 났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원동기를 뜯고, 살피고, 다시 맞추며 고치셨다. 그래서인지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 아버지는 언제나 기계 앞에 앉아 무언가를 고치고 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는 술도 무척 좋아하셨다.

그러나 술을 너무 많이 드신 탓에 결국 건강을 해치셨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술을 끊으셨다. 술을 끊고 나니 농한기인 겨울은 더욱 길고 심심하게 느껴지셨을 것이다.

그 긴 겨울을 보내기 위해 아버지가 찾은 일이 라디오 수리였다.

아버지는 타고난 손재주가 있으셨다. 특별히 어디에서 기술을 배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장 난 물건을 뜯어보고 다시 고치는 재주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그런 아버지의 손재주를 인정했던 것 같다. 집집마다 라디오가 고장 나면 사람들은 으레 아버지에게 가져왔다.

아버지는 고장 난 라디오를 앞에 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셨다. 작은 부품을 만지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고장 난 곳을 찾아내셨다. 그렇게 아버지의 손을 거친 라디오에서 다시 사람의 목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이 많지 않았던 겨울날 아버지에게 라디오를 고치는 일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평생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며 살아온 사람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를 짓고 방앗간의 원동기를 고치고, 긴 겨울에는 마을 사람들의 라디오를 고치던 사람.

내 유년의 기억 속 아버지는 그렇게 언제나 무언가를 고치는 사람이었다.

고장 난 원동기를 고치고,
멈춰 버린 라디오를 다시 살려내고,
어쩌면 그렇게 가족의 삶도 묵묵히 이어가고 계셨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기계 앞에 쪼그리고 앉아 기름 묻은 손으로 원동기를 만지던 아버지의 어깨 위에 얼마나 무거운 삶의 무게가 놓여 있었는지를.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야,
나는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하나씩 다시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