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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내리는 날

1년에 한 번, 추석을 앞둔 주 토요일이면 고조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모여 공동 벌초를 한다. 우리 집안에서는 이 행사를 ‘풀을 내리는 날’이라고 부른다.

여러 해 전, 집안의 장손이신 형님께서 삼막골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산소들을 한곳으로 모으는 일을 주선하셨다. 마을 동제를 지내는 곳 위쪽에 넓은 터를 마련하고 선산을 조성하여 조상님들을 모셨다. 그때부터 우리는 날을 정해 함께 풀을 내리고, 추석 성묘를 대신해 조상님들을 찾아뵙고 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많은 자손들이 모였다. 일손이 넉넉하니 풀을 내리는 일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시는 분들이 생겼고, 살아 계신 분들도 세월의 흐름을 비켜 갈 수는 없었다. 연로하거나 몸이 불편해져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이 점점 늘어났다.

작은 집안 축제 같았던 그 시절

불과 20년 전만 해도 산소에 풀을 내리는 행사는 작은 집안 축제와 같았다.

증조부모님부터 여러 대의 산소가 흩어져 있어 벌초는 여러 곳에서 이루어졌지만, 행사 전날이면 집안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전야를 보냈다. 사는 이야기,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 먼저 세상을 떠나신 어른들의 이야기, 유년 시절의 추억과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까지. 그렇게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웃음소리와 추억이 오가는 그 시간은 벌초를 앞둔 집안의 작은 잔치였다.

풀을 내리는 당일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각자의 장비를 챙겼다. 그리고 자신에게 배당된 산소를 찾아 산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낫을 들고 풀을 베었다. 그러다 예초기가 보급되면서 작업 방식도 달라졌다. 2행정 엔진 예초기에서 4행정 가솔린 예초기로, LPG를 사용하는 예초기로, 이제는 배터리 예초기로까지 장비가 다양해졌다.

낫으로 풀을 벨 때는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사람이 많이 투입되면 작업 시간이 줄어들었고, 일손이 부족하면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금은 예초기 덕분에 장비는 훨씬 좋아졌지만, 정작 풀을 내리는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

올해도 우리가 함께 해냈다

올해 풀을 내리는 날에는 모두 6명이 참석했다. 그중 한 명은 밤샘 근무를 마치고 곧바로 출발해 늦게 도착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함께하기 위해 달려온 사촌이 참 고마웠다. 같이 한다는 마음이 참 곱게 느껴졌다.

이날 사용한 예초기는 모두 세 대였다. 4행정 가솔린 엔진 예초기 두 대와 배터리 예초기 한 대였다. 가솔린 예초기 한 대에는 와이어를, 다른 한 대에는 삼도날을 장착했고, 배터리 예초기에는 이도날을 사용했다. 산소에 도착하자 허리 치료를 계속 받고 계신 사촌 형님이 한참 동안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셨다. 장염 증세가 있던 6촌 동생도 무리하지 못하고 잠시 쉬어야 했다.

결국 예초기를 든 두 사람과 갈퀴를 든 한 사람이 한동안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 갔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한참을 작업한 끝에 조금씩 산소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간에 몸을 추스른 사촌 형님과 6촌 동생도 다시 작업에 동참했다. 일손이 보태지니 한결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 몸이 힘든 것보다 아픈 형님과 동생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 짠하게 느껴졌다. ‘우리도 이제 나이를 먹어 가는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깨끗해진 산소 앞에서

풀을 내리는 작업을 모두 마치고 산소를 바라보았다. 무성했던 풀이 말끔하게 정리된 산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땀 흘린 보람이 느껴졌고, 마음도 한결 개운해졌다. 올해도 우리가 함께 해냈다는 만족감이 풀을 내리며 느꼈던 고단함보다 훨씬 컸다.

추석 성묘를 마치고 산소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제는 우리도 풀을 내리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느새 우리 집안에도 70대를 바라보는 형님들이 계신다. 체력적인 한계와 현실적인 여건을 생각하면, 풀을 내리는 방법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 몇 년만 더 우리 손으로 함께 풀을 내리는 시간을 이어 가고 싶다. 그러나 언젠가는 산림조합에 의뢰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풀을 내리는 날은 단순히 산소의 풀을 정리하는 날이 아닐지도 모른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며,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날이다. 언젠가 직접 풀을 내리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이 소중한 전통과 만남의 의미만큼은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올해도 함께해 준 형님과 아우들, 그리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준 사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올해도 우리가 함께 해냈다. 그 한마디면 충분한, 따뜻한 풀을 내리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