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추석 단상

추석이면 몇 년 전부터 정해진 루틴이 있다. 1년에 한 번 장인어른 산소에 성묘를 가는 일이 그것이다. 추석 전날이나 연휴 첫날에는 꼭 울진군 기성면에 있는 산소를 찾는다. 해마다 가는 길이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물리적인 거리의 한계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원주에 있는 처남 부부를 태우고 울진으로 향한다. 휴게소에서 한두 번 쉬다 보면 오전 11시쯤 산소에 도착한다.

도착해서 가지고 간 짐을 산소로 옮기고 주변을 둘러본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소리가 산소에 굴을 파놓았다. 삽으로 굴을 메우고 주변의 나무들도 살펴본다. 작년에 톱을 가지고 가서 주변 나무들을 정리해서인지 산소 주변이 깔끔하고 보기 좋았다.

성묘를 마치고 향한 곳은 외할머니와 외삼촌 산소다. 20여 분을 이동해 외가에 도착하면 그 주변에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산소가 있다. 아내가 어렸을 때 외가에 와서 지내던 추억이 있는 집이다. 그러나 외삼촌이 돌아가신 후 집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문창호지의 흰빛은 바래고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외할머니 산소에 가려고 나섰지만 숲이 너무 우거져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외삼촌 산소에 가서 성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간을 단축하려고 외할머니와 외삼촌 산소에 들르는 코스를 생략하려고 해도 장모님께서 꼭 들렀다 오라고 당부하시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성묘를 마치고 외가집 댓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옛날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가집의 큰할머니와 함께 살던 이야기, 외삼촌과의 추억, 외가집에서 삼겹살에 술잔을 기울이던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잠시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집 주변을 둘러보니 토종벌통이 하나 보이고, 감나무에는 단감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단감을 몇 개 따서 챙겼다. 먹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장모님에게 유년 시절의 추억을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정리를 마치고 다시 차에 올라 돌아오는 길, 원주에 처남을 내려주니 18시 40분. 춘천에 도착하니 20시가 조금 넘었다. 몸은 무척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그러나 물리적인 거리와 걸린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처가를 다녀오고 나면 추석 당일이나 다음 날에는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다녀온다. 삼막골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시골에 들어가면서 들르는데, 2주 전에 혼자 벌초를 했기 때문에 산소와 주변의 나무, 풍경들이 익숙하다. 성묘를 하면서 올해는 다섯 잔을 올렸다. 부모님, 큰형님, 작은형님, 그리고 7월에 세상을 떠난 동생까지. 작년에는 네 잔이었는데 올해는 한 잔이 더 늘었다.

왠지 기분이 묘하다. 잔 하나가 늘고 두 잔이 늘어나는 것이 무슨 큰 차이가 있으랴. 하지만 그 잔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내 곁에 있던 사람의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묘를 마치고 사랑이가 묻혀 있는 곳도 살펴보았다. 고사리가 자라는 곳도 둘러보고, 벌나무와 헛개나무를 심어놓은 곳도 살펴보았다. 고사리는 작년보다 많이 퍼져 있었다. 반면 벌나무와 헛개나무는 무더위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는지 푸르름을 잃은 것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10월이 되면 상태가 좋지 않은 나무들은 보식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 곁에 묻히고 싶다던 동생. 올해 추석부터는 부모님과 함께 있으니, 이제는 같이 잔을 올리면 부모님과 같이 흠향하겠지 싶다.

산소에서 내려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추석이면 느끼는 것이지만…. 추석이 예전 같지 않네. 그 생각이 해가 갈수록 조금씩 짙어진다.


추석의 달빛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조용하고 따뜻한 빛이 머물기를.

Breath and 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