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재가 되어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예전 어르신들이 “장례를 치르고 나면 그때부터 가슴이 아프다.”고 하시던 말씀이 이제야 내 몸에도 찾아왔다. 빈소와 화장터에서는 정신없이 일을 치르느라 미처 느끼지 못했던 슬픔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꺼번에 밀려왔다. 폐부를 찌르듯 깊고 묵직한 아픔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이틀 동안 사람들로 북적이던 빈소도, 위로의 말들도, 함께 나누던 추억의 이야기들도 모두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때부터 마음속 빈자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이제야 동생이 정말 먼 길을 떠났다는 사실이 천천히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산을 오르내리며 뛰놀던 삼막골 산천, 여름이면 멱을 감던 개울, 들녘을 스쳐 지나던 바람, 해가 지도록 손이 갈라지도록 뛰어놀던 날들. 저녁 무렵이면 부모님은 밥 먹으라며 형제자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셨고, 그 이름 부름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종소리 같았다.
그때는 그것이 평생 계속될 줄 알았다.
살아오면서 형제라는 이름으로 참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웃기도 했고, 다투기도 했으며,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서로의 마음을 몰라 서운했던 날도 있었고, 미안한 마음을 끝내 말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성인이 되어 각자의 가정을 꾸린 뒤에는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끔 들려오는 동생의 소식은 늘 마음을 그곳으로 향하게 했다. 가까이 있지 않아도 형제는 늘 마음 한편에 머무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것은 함께 살아 있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였다. 지지고 볶고 살아온 시간들조차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별 앞에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이제 동생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바람을 따라 솔밭으로 흩어지고, 비가 되어 솔밭을 적시고, 소나무의 푸른 잎이 되고, 이름 모를 들꽃이 되어 다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함께 뛰놀던 그 산천 어디쯤에도 그 들꽃 하나가 조용히 피어 줄 것이다.
사람은 결국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남는 것은 재가 아니라 함께 걸어온 시간이고, 기억이며, 서로를 향했던 마음이다.
장례를 마친 뒤 나는 삶을 다시 천천히 되뇌어 본다. 무엇을 더 가지려 애쓰며 살아왔는지, 무엇 때문에 마음을 다치게 했는지,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얼마나 아끼며 살아왔는지를.
언젠가 나 또한 같은 길을 걸어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람을 따라 흩어질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다투더라도 오래 미워하지 말고, 미안하면 먼저 손을 내밀며, 고마우면 그때그때 말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에서 동생은 말했다.
“형, 모든 것이 미안해. 용서해.”
그리고 마지막 부탁 하나를 남겼다.
“고향에 묻히고 싶어.”
그 부탁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고향은 가난과 배고픔의 기억만 있는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부모님이 계셨고, 형제들이 있었고, 마음껏 뛰놀던 산과 들이 있었던 곳. 그래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을 ‘화양연화’라고 한다. 동생에게 그 화양연화는 어쩌면 어린 시절의 고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떠나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 같지만, 내게는 가장 소중한 것을 남겨 주었다.
살아 있는 동안 사랑은 미루지 말라는 것.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살아 있을 때 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함께할 수 있는 오늘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를.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너는 산들바람이 되어 우리 곁을 스치고, 나는 너와 함께했던 기억을 품은 채 오늘도 삶을 살아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