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내가 만난 꽃들의 기록

긴 겨울이 지나고 가장 먼저 봄을 알려준 것은 생강나무꽃이었다. 아직 산기슭에는 찬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노란 생강나무꽃은 누구보다 먼저 피어나 봄의 시작을 알렸다.

그 뒤를 이어 동백꽃이 피었다. 춘베리아의 추운 겨울을 견디고 피어난 동백꽃이라 더 반가웠다. 남쪽 지방에서나 잘 자랄 것 같던 동백이 우리 정원에서도 꽃을 보여주니, 그 자체로 작은 기쁨이었다.

동백꽃이 지나고 앞뜰에는 분홍빛 꽃잔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몇 해 전 꽃잔디가 죽어 앞뜰의 돌을 전부 캐내고, 산에서 흙을 퍼와 복구한 자리였다. 그곳에 2년 동안 공들여 심고 가꾼 꽃잔디가 다시 분홍빛 융단처럼 피어났다. 꽃잔디를 볼 때마다 꽃보다 먼저 흙을 나르던 시간과 기다림이 떠오른다.

이어 산당화가 붉은 꽃을 피우고, 목련이 커다란 꽃송이를 열었다. 라일락은 은은한 향기로 정원에 봄기운을 더했다. 진달래가 산과 마을길을 물들이고, 연산홍도 화사한 빛으로 봄의 한가운데를 채웠다.

땅 가까이에서는 할미꽃이 고개를 숙인 채 피어났고, 옥매화는 단정한 꽃으로 봄 정원의 빈자리를 채웠다. 민들레는 여기저기 노란 꽃을 피우며 들과 마당을 환하게 만들었다. 황매화도 노란 꽃을 늘어뜨리며 봄의 끝자락을 장식했다.

봄이 깊어지자 목단이 정원의 주인공이 되었다. 커다란 꽃송이는 언제 보아도 화려했다. 목단이 지기 시작할 무렵 작약이 뒤를 이었다. 토종작약과 개량작약이 차례로 피어나며 정원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무렵 데이지도 소박한 얼굴로 피어났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원 한쪽을 밝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꽃이다. 이어 불두화가 둥근 꽃송이를 키웠다. 처음에는 연둣빛이었다가 점차 흰빛으로 변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수레국화가 피면 승호대로 향하던 산책길이 떠오른다. 삼막골은 춘천에서도 호수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고, 승호대는 은하수 사진을 찍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승호대 산책길에서 임도 녹화를 위해 심어진 듯한 수레국화를 발견했다. 그중 두 뿌리를 조심스럽게 캐어 집으로 옮겨 심었는데, 수레국화의 끈질긴 생명력 덕분에 지금은 정원 곳곳에서 파란 꽃을 피우고 있다.

꽃양귀비도 붉은 꽃잎을 흔들며 초여름을 알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꽃잎은 마치 나비가 날아가는 듯했다.

해당화에도 특별한 기억이 있다. 마을 산책 중 하얀 찔레꽃 옆에 붉은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붉은 찔레꽃인 줄 알고 호기심에 다가갔는데, 자세히 보니 찔레가 아니라 해당화였다. 가시에 찔려가며 어렵게 캐어 우리 정원으로 입양한 꽃이다. 그래서 해당화가 필 때마다 그날의 산책길과 손끝에 남았던 가시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은 장미가 활짝 피어 정원의 중심에 서 있다. 담장을 따라 피어난 장미는 초여름 정원의 가장 화려한 장면을 만들어준다. 겨울에 전정하고 가지를 정리해준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꽃이다.

장미와 함께 금계국도 노랗게 피어났다. 금계국이 바람에 흔들리면 정원 전체가 환해지는 느낌이다. 기린초는 작지만 단단한 꽃을 피우고, 고수꽃은 하얀 레이스처럼 부드러운 꽃을 보여준다. 엉겅퀴도 보랏빛 꽃을 피우며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고 있다.

이렇게 사진첩을 뒤져보며 다시 정리해 보니, 올해 봄부터 초여름까지 참 많은 꽃들이 피고 졌다. 생강나무꽃에서 시작해 동백꽃, 꽃잔디, 산당화, 목련, 라일락, 진달래, 연산홍, 할미꽃, 옥매화, 민들레, 황매화, 목단, 작약, 데이지, 불두화, 수레국화, 꽃양귀비, 해당화, 장미, 금계국, 기린초, 고수꽃, 엉겅퀴까지 이어졌다.

꽃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았다. 자신의 차례가 오면 피어나고, 시간이 되면 조용히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 꽃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정원을 가꾸며 느끼는 즐거움은 꽃 한 송이를 보는 데만 있지 않다. 꽃이 피고 지는 순서를 따라가며 계절의 흐름을 함께 살아가는 데 있다. 올해도 꽃들은 저마다의 시간에 피어나 봄과 초여름을 아름답게 수놓아 주었다.

꽃은 해마다 다시 피지만,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간은 매년 조금씩 쌓여간다. 그래서 정원은 꽃밭이 아니라 추억이 자라는 곳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