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목단 뿌리를 나누며 내년 봄을 기다리다
금요일 저녁, 시골집에 들어와 가장 먼저 고양이들 밥을 챙겼다.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는지 형님댁 마당에 차를 주차하는데, 데크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 다섯 마리가 차를 세우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짐을 챙겨 들고 “얘들아, 밥 먹으러 가자.” 하고 집으로 향했더니 고양이들도 부지런히 뒤따라 움직인다.
주중에 나무를 쪼개는 유압도끼를 구입했다. 작동 상태를 확인하면서 미리 쪼개 놓은 참나무 장작이 있어 아궁이에 불을 붙이기는 수월했다. 불길이 안정되는 것을 확인하고 무쇠솥에 물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니 물이 부족했다. 물을 가득 채워 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구들장이 데워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방을 청소하고 보일러를 가동시켰다. 한 시간 정도면 바닥이 충분히 따뜻해지니 그 이후에는 보일러를 꺼 두어도 무방하다.
방을 청소하고 짐까지 정리한 뒤 다시 아궁이로 향했다. 참나무 장작을 몇 개 더 넣고는 아무 생각 없이 불멍을 즐겼다. 활활 타오르는 참나무 장작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마음속으로 평안함이 밀려온다. 무상무아(無常無我). 생각도 없고 나도 없는 그 순간을 즐긴다. 어쩌면 이것이 굳이 아궁이를 없애지 않고 남겨 두는, 나만의 편안한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구들장의 온기와 가을 목단
다음 날 아침, 개운하게 눈을 떴다. 역시 아궁이에 불을 피워 데워진 구들장의 온기는 보일러를 통해 순환하는 물의 온기와는 사뭇 다르다. 바닥 깊은 곳에서 은근하게 올라오는 따뜻함이 몸을 편안하게 해준다. 오래전 이 집에 구들장을 놓아 주신 분들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작년에 방 안으로 연기가 들어오던 곳을 막아 놓은 덕분에 이제는 아궁이에 불을 때도 연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따뜻함에 쾌적함까지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문득 창밖 정원을 바라보았다. 봄이면 아름다운 꽃으로 정원을 환하게 밝혀 주던 목단이 이제는 붉고 노랗게 물든 잎으로 가을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꽃이 피었을 때의 화려함도 아름답지만,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목단의 모습도 나름의 운치가 있다.
목단을 가까이서 살펴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뿌리 주변에서 여러 개의 새로운 가지가 올라와 제법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다. 올해는 목단 씨앗도 발아에 성공해 두 개의 화분에서 어린 목단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씨앗으로 키운 목단이 꽃을 피우려면 여러 해를 기다려야 한다. 그에 비하면 뿌리 나누기는 비교적 빠르게 목단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다. 뿌리에서 올라온 가지들이 충분히 자란 것을 보니 이번 가을에는 뿌리 나누기를 시도해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일단 두 그루를 나누어 심고 내년 봄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목단 뿌리 나누기, 새로운 시작
작업에 필요한 도구부터 준비했다. 전지가위와 삽, 괭이, 호미를 챙기고 뿌리를 분리할 때 사용할 작은 톱도 준비했다. 잘라낸 부분에 바를 상처보호제와 새로운 뿌리가 자리 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상토도 마련했다. 먼저 뿌리 나누기를 할 목단 주변의 흙을 조심스럽게 파냈다. 흙을 걷어 내고 뿌리의 상태를 확인하니 다행히 뿌리 나누기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새로운 가지에 뿌리가 붙어 있는 부분을 확인하고 작은 톱으로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분리한 부분에는 상처보호제를 바르고 충분히 마르기를 기다렸다.
옆에 있는 목단도 뿌리에서 올라온 가지가 많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흙을 파 보았더니 이 목단 역시 뿌리를 나누기에 충분한 상태였다. 조금 더 깊이 흙을 걷어 내고 뿌리의 연결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뿌리가 강하게 붙어 있지 않아 힘을 주어 분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두 그루의 목단에서 새로운 목단 두 그루를 얻었다. 분리한 뿌리의 상처 부위에도 보호제를 바르고 마르기를 기다렸다.
돌 많은 땅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다
상처보호제가 마르는 동안 새롭게 옮겨 심을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삽을 들고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삽질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 마을처럼 돌이 많은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삽이 흙 속으로 시원하게 들어가면 좋으련만, 조금만 파 내려가면 어김없이 돌이 걸린다. 작은 돌은 호미나 괭이로 걷어 내면 되지만, 큰 돌을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렛대를 이용해 돌을 들어 올려야 한다.
이번만큼은 순탄하게 끝나기를 바랐지만 역시나 큰 돌이 나타났다. 결국 지렛대까지 동원해 돌을 파냈다. 힘은 들었지만 새로운 목단이 뿌리내릴 자리를 마련한다는 생각에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마침내 두 그루의 목단이 들어갈 구덩이를 마련했다. 상처보호제도 충분히 말랐고 새로운 보금자리도 준비되었다.
분리한 목단을 구덩이에 넣고 뿌리 주변에 상토를 채워 넣었다. 기존의 흙보다 깨끗한 상토가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뿌리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흙을 채우고 물을 충분히 주었다. 그 위에 파낸 흙을 다시 채워 넣고 가볍게 다진 뒤 물을 주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제 사람이 할 일은 끝났다. 남은 일은 목단 스스로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겨울을 잘 견뎌 주는 것이다.
다섯 그루에서 아홉 그루로, 내년 봄을 기다리며
이번 뿌리 나누기로 목단 두 그루가 새롭게 생겼다. 원래 다섯 그루였던 목단이 일곱 그루가 되었다. 여기에 올해 씨앗이 발아하여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목단 두 그루까지 내년 봄에 옮겨 심는다면 모두 아홉 그루가 된다. 다섯 그루에서 일곱 그루, 그리고 아홉 그루. 숫자를 헤아려 보니 절로 흐뭇한 마음이 든다. 목단은 봄이면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지만, 그 꽃을 보기까지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 가을에 뿌리를 나누고 겨울을 지나 봄을 기다리는 일도 결국 자연의 시간을 따르는 일이다.
내년 봄에는 새롭게 자리를 잡은 목단까지 일곱 그루에서 꽃을 피워 줄 수 있을까. 물론 옮겨 심은 목단이 새로운 땅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무사히 뿌리를 내리고 봄을 맞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올해보다 조금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봄 정원을 상상해 본다.
가을 정원에서 목단의 뿌리를 나누었지만, 어쩌면 내가 심은 것은 내년 봄을 기다리는 작은 설렘인지도 모르겠다.
[산들바람] 톡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