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준비하며
작년 김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배추 속에 까맣게 붙어 있던 진딧물이다.
배추 겉잎도 벌레가 갉아 먹기는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대로 멀쩡했다. 그래서 속도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김장을 하려고 배추를 갈라 보니 생각보다 진딧물이 많았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키운 대가는 결국 배추를 여기저기 많이 도려내는 것으로 돌려받았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올해는 배추를 심기 전부터 준비를 좀 더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월 4일, 먼저 배추밭을 갈았다. 밭을 갈기 전 예초기로 무성하게 자란 풀부터 제거했다. 풀을 베어낸 뒤 고등어 성분이 들어간 비료를 골고루 뿌리고 관리기를 이용해 밭을 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려 나간 풀이 관리기 로터리에 자꾸 감겼다. 몇 번이나 기계를 멈추고 로터리에 걸린 풀을 걷어내야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지나자 작업이 한결 수월해졌다. 관리기를 이용하여 앞으로 갈고, 뒤로 갈기를 반복하며 흙을 골고루 뒤집었다. 한쪽에 자라고 있는 고구마 줄기는 다치지 않도록 피해 가며 조심스럽게 밭을 정리했다.
한 번 갈고,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몇 차례 관리기가 오가고 나니 울퉁불퉁했던 밭이 제법 반듯해졌다. 곱게 정리된 흙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까지 개운해진다. ‘이제 배추를 심어도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잘 정리된 밭이 괜히 예뻐 보였다.
그다음 주 토요일에는 토양살충제와 복합 비료를 골고루 뿌렸다. 그리고 다시 관리기로 밭을 갈아 살충제와 비료가 흙 속에 골고루 섞이도록 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세 차례 정도 밭을 오갔다. 이제 사람이 할 수 있는 준비는 어느 정도 끝났다. 비료가 땅속에서 녹아들고 흙과 어우러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이제부터는 자연의 시간이다.
그런데 유독 비가 오지 않았다. 배추 모종을 심을 때가 다가오는데 땅이 너무 마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모종을 심을 즈음 이번 주말 8월 22일에 비가 내려 주었다. 자연이 때를 알고 도와주는 것 같아 반가웠다. 비가 내린 뒤 배추 모종을 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심으려고 보니 한 가지 실수를 했다. 멀칭비닐을 씌울 때 모종을 심을 자리에 미리 구멍을 뚫어 놓지 않은 것이다. 비닐을 걷어 구멍을 만들어 보니 그 안의 흙은 생각보다 바싹 말라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수도 호스를 길게 끌어와 모종을 심을 자리마다 물을 충분히 주었다. 흙이 물을 머금기를 기다린 뒤 어린 배추 모종을 하나하나 심었다. 모종을 모두 심은 뒤에는 다시 한 번 물을 듬뿍 주었다.
그날 오후, 참 다행스럽게도 비가 많이 내렸다. 다음 날 밭에 내려가 보았다. 갓 심은 배추 모종들이 밤새 비를 흠뻑 머금었는지 축 늘어지지 않고 파릇파릇한 잎을 세우고 있었다. 작은 모종들이 줄을 맞춰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이제 정말 기다림의 시간이다.
배추가 뿌리를 내리고, 잎을 하나씩 늘리고, 가을 햇볕과 비를 맞으며 속을 채워 가는 일은 내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사람은 땅을 갈고, 거름을 주고, 모종을 심고, 물을 줄 뿐이다. 그 다음은 자연이 하는 일이다. 다만 올해는 한 가지 원칙을 바꾸어 보려고 한다. 작년에는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배추를 길렀지만,
올해는 무농약보다는 저농약으로 배추를 길러 볼 생각이다. 조금 더 손이 가더라도 벌레가 생기는 시기를 잘 살펴 꼭 필요한 만큼만 방제하려 한다. 작년 김장날 배추 속에서 만났던 그 까만 진딧물의 악몽을 올해는 다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김장날에는 속이 꽉 찬 깨끗한 배추를 반으로 가르며,
“올해는 배추 농사가 잘됐네.”
하고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기다린다.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어린 배추들이 가을을 지나 겨울 김장날까지 무사히 잘 자라주기를.
이제는 자연의 시간이다.
자연과 정원의 기록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