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숭아의 추억
3년 전이었다.
개복숭아가 기관지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개복숭아 효소를 담기로 했다. 평소 기관지가 좋지 않아 고생을 하던 터라 귀가 솔깃했다. 5월쯤, 개복숭아가 달리고 씨가 아직 단단하게 여물기 전에 담그는 것이 좋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해 집 주변에 심어 놓고 가꾸던 개복숭아나무 세 그루에서 열매를 수확했다.
그 양이 무려 40kg이나 되었다. 개복숭아를 수확할 때는 반드시 복장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개복숭아의 잔털이 피부에 붙으면 여간 가려운 것이 아니다. 얼굴과 팔을 가리고 장갑도 단단히 껴야 한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부터 복숭아를 따 먹으며 놀았지만, 세월이 흘러도 개복숭아 털만큼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사실 개복숭아 효소를 담는 일에서 가장 힘든 것은 따는 일이 아니다. 털을 제거하는 일이다. 개복숭아 효소를 담는 노동의 3분의 2는 이 털을 없애는 데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확한 개복숭아를 커다란 그릇에 담고 물을 가득 붓는다. 고무장갑을 끼고 열매 하나하나를 박박 문지른다.
문지르고 물을 버린다.
다시 물을 받는다.
또 문지른다.
또 물을 버린다.
이 과정을 스무 번도 넘게 반복해야 비로소 개복숭아의 잔털이 어느 정도 사라진다. 물을 버리고 다시 받고, 문지르고 또 버리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은근히 체력도 소모된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노동을 반복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농촌에서 얻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식탁에 올라오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땅에서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옛말에 쌀 한 톨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손길이 필요하다고 했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기다리고, 거두고, 다듬어야 비로소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다. 개복숭아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털을 깨끗이 제거한 개복숭아는 물기를 충분히 말린다. 그리고 항아리를 준비한다. 개복숭아 40kg.
설탕 40kg. 항아리 안에 차곡차곡 넣는다. 여기까지가 사람의 몫이다.
이제부터는 자연의 시간이다. 가끔 항아리 뚜껑을 열어본다. 설탕은 잘 녹고 있는지, 개복숭아에서 수분이 잘 빠져나오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다시 뚜껑을 닫는다. 더 이상 사람이 서두를 일은 없다. 자연에게 맡기면 된다. 시간이 개복숭아를 익히고, 자연이 그 맛을 만들어 준다. 그 긴 기다림 속에 가끔 사람의 관심이 더해지면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 집만의 개복숭아 효소가 만들어진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개복숭아 효소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3년 전에 담근 항아리도 앞으로 2년은 더 기다려 볼 생각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나만의 개복숭아 효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산들바람 일기의 개복숭아 효소. 그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풀어볼 생각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효소가 아니라 개복숭아의 추억이다.
시골아이였던 나에게 개복숭아는 늦여름의 간식이었다.
그 시절 개복숭아에는 농약 같은 것을 치지 않았다. 나무에서 잘 익은 열매 하나를 따서 반으로 갈라보면 십중팔구 벌레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찌나 맛있는 곳만 골라 먹었는지 정작 내가 먹을 만한 부분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운이 좋은 날이 있었다. 열 개를 따면 한두 개쯤. 벌레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멀쩡한 개복숭아가 있었다. 한입 베어 물면 달콤했다. 그리고 조금 시큼했다. 잘 익은 개복숭아 특유의 향이 입안에 퍼졌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이었다.
열 개 중 한두 개에서 만나는 천국의 맛. 오늘 문득 그 맛이 생각났다. 올해는 일부러 개복숭아 효소를 담지 않았다. 효소보다 어린 날의 그 천국의 맛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시골집 주변의 개복숭아나무에는 열매들이 붉으스름하게 익어가고 있다. 며칠 전 몇 개를 따서 먹어 보았다.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개복숭아인데 어린 시절 먹었던 그 천국의 맛은 아니었다.
입맛이 변한 것인지, 개복숭아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기억 속의 맛이 너무 아름답게 익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맛은 예전과 조금 달랐지만 향수만큼은 그대로였다. 내자가 옆에서 한입 먹어 보더니 말했다.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빙긋이 웃었다. 그 사람에게는 그냥 조금 시고 달콤한 개복숭아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 속에는 어린 시절의 산과 들이 있고, 여름 햇살이 있고, 벌레 먹은 복숭아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먹을 곳을 찾던 시골아이가 있다. 어쩌면 나는 개복숭아를 먹은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한입 베어 문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작은 창고 하나쯤 있는 것 같다. 그곳에는 오래된 냄새도 있고, 잊고 있던 맛도 있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시간도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내 마음속 창고에도 오래된 개복숭아 몇 알이 들어 있었다. 오늘은 그 창고 문을 열고 비밀 하나를 꺼내 보았다. 열 개 중 한두 개에서 만났던, 어린 시절의 천국의 맛. 그것이 오늘 내가 꺼내 본 개복숭아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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