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식 전화기

자석식 전화기와 만두국, 그 시절 고향이 보낸 따뜻한 심부름

“누구네 아버지 전화 왔다!” — 숨 가쁘게 달렸던 고갯길

그 시절 마을에는 전화가 단 한 대뿐이었습니다. 큰집 마루 한켠에 놓인 검은 자석식 전화기. 어느 날이면 큰어머니가 문을 “턱” 열고 외치셨습니다.

“야야! 누구네 아부지 전화 왔다! 빨리 가서 받으라 해라!”

그 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저는 이미 뛰고 있었습니다. 샘말래길, 밭두렁길, 구비구비 비탈길을 있는 힘껏 달려가던 그 작은 다리. 숨이 턱까지 차올라 마루에 도착하면 큰어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지요. “누가 보면 죽는 줄 알겠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 시절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막배와 우편물 — 형 대신 맡았던 작은 의무

막배가 선착장에 들어오면 우편물이 동네 곳곳에 배달되어야 했습니다. 원래 큰형의 일이었지만, 형은 늘 동생들에게 슬쩍 밀어버리곤 했죠. 결국 제가 뛰었습니다.

우편봉투에서 느껴지던 따뜻한 햇빛 냄새와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 작은 손에 들린 봉투 하나에도 그 시절의 정이 가득했습니다. 형의 모른 척하던 그 뒷모습조차 이제는 그리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생신 — 마음을 나누는 점심 초대

아버지는 평생 “사람은 먹을 걸 나누어야 정이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신날 아침, 어머니는 저를 불러 동네 어르신들께 점심 초대를 부탁하셨지요.

골목을 따라 어르신들께 일일이 문안을 드렸습니다. “아버지 생신이라 점심 준비했어요. 시간 되시면 꼭 오세요.” 어르신들의 인자한 미소와 “그래 꼭 가마”라는 한마디. 제가 한 심부름 중 가장 정감이 있고 싫지 않은, 오히려 제가 위로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설날 관사의 만두국 — 겨울 골목을 데우던 온기

어머니가 정성 들여 빚은 묵직한 만두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설날이 지나면 어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국을 보자기에 싸서 저를 학교 관사로 보내셨습니다.

겨울바람은 차가웠지만, 보자기 속 만두국의 온기가 손끝을 천천히 데워주었습니다. 관사 문을 두드리자 놀란 눈으로 맞이해주시던 선생님. “어머니에게 잘 먹겠다고 전해라” 하시던 그 목소리와 골목길에 은은하게 퍼지던 만두국의 향기는 제 어린 시절의 겨울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덮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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