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 이야기 1편 — 봉화산 아래, 심부름 많은 아이
1. 봉화산 아래 살던 심부름꾼 소년의 기억
강원도 봉화산 자락, 흙먼지가 날리고 햇살이 가득했던 그 시절의 고향 집이 떠오릅니다. 요즘 아이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당시 저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부모님의 ‘심부름’이었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섭기도 했던 그 시절의 심부름길에는 지금은 사라져가는 흙냄새와 바람의 결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2. 담안집 우물가, 공포와 용기 사이의 비탈길
점심시간이 되면 어머니는 늘 낡은 주전자를 내어주셨습니다. “주전자 들고 담안집 우물가에서 물 좀 떠와라”라는 말은 저에게 가장 무서운 명령이었습니다.
- 주전자를 던지게 한 공포: 풀숲에서 스르륵 움직이는 뱀의 그림자라도 보는 날에는 주전자를 내팽개치고 집까지 쉼 없이 달렸습니다.
- 어머니의 웃음과 용기: 겁쟁이라며 웃으시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다시 주전자를 들고 비탈길을 오르던 그 순간. 어린 저에게 그 길은 세상에서 가장 큰 도전이자 용기가 필요한 길이었습니다.

3. 친구들의 물장구와 소 곁을 지키던 느림의 미학
방과 후에도 자유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소에게 풀을 먹이러 가는 길, 멀리 냇가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물장구 소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소 옆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뜯는 소리를 들으며 보낸 시간은 저에게 **’느림의 가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풀보다 더 천천히 흐르던 고향의 시간은, 지금의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저에게 가장 큰 정신적 자산이자 선물이 되었습니다.
4. 화전밭의 작은 파수꾼: 콩 싹을 지키던 아이
주말이면 화전밭으로 올라가 ‘비둘기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갓 틔운 콩 싹을 쪼아 먹으려는 비둘기들을 쫓기 위해 찌그러진 깡통과 세수대야를 두드리며 산비탈을 뛰었습니다.
“훠어이! 훠어이!” 목이 터져라 외치던 소년의 외침은 단순히 곡식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했던, 어린 마음이 콩잎보다 더 여리고 푸르렀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5. 맺음말: 그때의 심부름이 지금의 나를 만들다
당시에는 왜 나만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싶어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그 모든 심부름의 발걸음이 제 마음속에서 가장 따뜻한 빛으로 남아 있습니다.
햇빛 냄새, 흙냄새, 그리고 뺨을 스치던 바람의 감촉까지. 고향은 심부름이라는 이름의 일상을 통해 저를 키워주고 있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잊지 못할 ‘어린 시절의 심부름’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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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옛추억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 산들바람 다이어리는 농촌의 일상과 삶을 기록하는 개인 미디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