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 이야기 1편 — 봉화산 아래, 심부름 많은 아이


봉화산 아래 살던 그 시절,
나는 참 심부름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 시절의 햇빛과 흙냄새, 겁도 억울함도 그대로 남아 있는
그 이야기를 먼저 들려드릴게요.


🏺 우물가로 가던 길, 햇빛 아래 두근거리던 아이

점심때만 되면 어머니의 부름이 들렸습니다.
“얘야, 주전자 들고 담안집 우물가에서 물 좀 떠와라.”
바람은 상쾌했고 햇빛은 따뜻했지만
그 길은 항상 두려웠습니다.
가다가 뱀이라도 만나면 정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지요.
뱀의 그림자만 보여도
주전자를 던지고 냅다 뛰어 집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늘 웃으며
“에구, 겁쟁이. 또 가라.”
하셨습니다.
나는 울먹이며 다시 주전자를 들고
겁을 삼키며 비탈길을 올랐습니다.


🐄 친구는 냇가에, 나는 소 곁에 앉아서

학교가 끝났다고 해서 자유로운 건 아니었습니다.
“얘야, 소 데리고 풀 좀 먹이고 와라.”
친구들은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었지만
나는 소 옆에 쪼그리고 앉아
풀보다 더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씹었습니다.
그때는 부러웠고 답답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유와 느림이 오히려 고향의 선물이었습니다.


🫘 콩 싹 지키던 어린 수호자

주말이면 화전밭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비둘기들이 콩 싹을 쪼아 먹지 못하게 지키는 일.
찌그러진 깡통이나 세수대야를 흔들며
“훠어이! 훠어이!”
소리를 지르며 산비탈을 뛰어다녔습니다.
놀고 싶은 마음이 콩잎보다 더 여렸던 시절.
하지만 그 마음을 누구도 알지 못했던 시절.


🌙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심부름은 ‘따뜻한 빛’

그때는 싫었고 억울했고
왜 나만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싶었던 시간들이지만
이제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이 내 마음속에서 가장 따뜻하게 빛납니다.
햇빛 냄새, 흙냄새, 바람의 결.
어린 나의 작은 발걸음 속에
고향은 그렇게 나를 키워주고 있었습니다.


👉 다음 편 예고 (2편)

마을에 한 대뿐이던 전화기 심부름,
논두렁을 뛰어넘던 숨소리,
막배 우편물 배달까지…
심부름 많은 아이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