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핀 작약꽃 곁작약, 홋작약 이미지

작약꽃은 언제나 진심이다

목단이 고개를 숙인 뒤의 시골집은 또 다른 꽃들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조용해진 듯했던 마당 곳곳에서 꽃들은 순서도 없이 불쑥불쑥 얼굴을 내민다.

하얀 샤스타 데이지는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빨간 양귀비는 뜨거운 색으로 시선을 붙잡는다.
베트남 국수에 어울리는 고수는 소박한 매력으로 그 독특한 향기를 내뿜고 있고, 부처님의 머리를 닮았다는 불두화는 둥글고 묵직한 존재감으로 마당 한켠을 지킨다. 작지만 강한 향기를 가진 미스김 라일락은 지나가는 순간마다 사람을 붙잡고, 부끄러운 듯 피어난 엉겅퀴는 자세히 바라볼수록 더 아름답다.

예전에는 보이면 베어버렸던 애기똥풀도 요즘은 자꾸 눈길이 간다. 노란 꽃 하나 피우기 위해 척박한 자리에서도 버텨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미안해진다.
꽃을 받치고 있는 잎의 모습이 광대의 옷깃 같기도 하고, 춤추는 모습 같기도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광대나물꽃도 봄 들녘을 환하게 채운다.
새순처럼 나와서 피는 박태기의 분홍꽃은 봄을 기다리는 주인장의 마음과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곧 날아갈 것 같은 민들레 홀씨는 봄을 보내고 싶지 않은 새색시의 고운 자태를 보는듯 하다.
봄이 왔음을 알려주며 행운을 주려한 클로버도, 한달내내 분홍의 화사함을 보여주며 봄바람에 향기까지 전해주던 꽃잔디도 다음 계절을 준비하며 조용히 자리를 비켜준다.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꽃들이 피고 져도 결국 내 마음속에 가장 오래 남는 꽃은 작약이다. 겹작약과 홑작약이 주는 마음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겹작약. 그리고 욕심 없이 고고하게 피어나는 홑작약. 작약은 화려하면서도 품위가 있고, 강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느낌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꽃이 피는 시기가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먼저 작약 쪽으로 향한다.

올해는 꽃들이 쓰러질까 걱정되어 꽃지지대를 세워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모습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꽃이 오래 피어 있어야 자연의 힘으로 수정도 이루어지고, 그토록 기다리는 작약 씨앗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씨앗을 다시 파종하며 내년의 시간을 기다리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기다림까지 아름다운 꽃 작약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서는 내년 준비가 시작된다. 언제 씨앗을 받아야 하는지, 어디에 심어야 하는지, 어떤 자리가 더 좋을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꽃 하나를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보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계절 전체를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은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계절을 반복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해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이 되어 간다.

그래서 올해의 작약은 작년의 작약과 또 다르게 마음에 남는다.

꽃은 피는 순간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마음까지 함께 피워낸다는 것을 작약은 조용히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