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간의 농사경험으로 생산한 김장용 배추

[산들바람의 귀촌일기] 10 초보 농부의 혹독한 입문기: 꽃에 취하고 날씨에 속다

1. 설레는 첫 삽, 삼막골 텃밭의 시작

집 수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무렵, 드디어 꿈에 그리던 텃밭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상추, 치커리, 브로콜리, 시금치 같은 쌈 채소부터 고추, 가지, 그리고 든든한 감자까지. 욕심껏 모종을 사다 심으며 풍성한 식탁을 상상했습니다. 흙을 만지는 그 설렘은 도시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생소하고도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2. 시골 날씨의 무서움: 너무 서둘렀던 첫 모종

하지만 자연은 초보 농부에게 그리 너그럽지 않았습니다. 빨리 수확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모종을 심었으나, 시골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너무 몰랐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낮에는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다가도 밤이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시골의 큰 일교차를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정성껏 심은 모종들이 하룻밤 사이에 동사(凍死)하는 광경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죽은 모종을 뽑아내며, 시골 날씨에 순응하는 법을 첫 수업료를 내고 배웠습니다.


3. 감자 농사의 비극: 꽃은 아름다웠으나 수확은 없었다

가장 큰 공을 들였던 감자 농사는 그야말로 ‘완패’였습니다.

  • 감자꽃의 유혹: 감자 줄기가 자라며 피워낸 꽃이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알이 굵어지려면 꽃을 따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 고운 꽃을 도저히 꺾을 수가 없어 그대로 두었습니다.
  • 장마의 역습: 감자는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캐야 한다는 기초 상식조차 없었습니다. “조금 더 있다가 캐야지” 하며 미루던 중 장마를 정면으로 맞았습니다.
  • 허탈한 수확: 장마가 지나고 땅이 마르길 기다려 설레는 마음으로 호미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흙 속에서 나온 것은 포슬포슬한 감자가 아니라 형체도 없이 썩어버린 잔해들뿐이었습니다. 꽃을 탐한 대가는 ‘수확량 0’이라는 허탈한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4. 탄저병이 앗아간 고추,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건강’

쌈 채소 못지않게 공을 들인 것이 고추였습니다.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를 보며 행복한 결실을 꿈꿨지만, 장마는 감자뿐만 아니라 고추마저 시샘했습니다. 장마 직후 찾아온 탄저병은 무서운 속도로 고추들을 썩고 문드러지게 만들었습니다.

속이 상해 눈물이 날 뻔했지만, 저는 이것을 삼막골이 내준 ‘수업료’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농약을 쳤더라면 고추를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는 고추 한 포대보다 내자의 건강이 훨씬 소중했습니다. 건강을 위해 선택한 시골 생활이었기에, 농약 없이 지어낸 빈손의 결과는 오히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한 정직한 기회비용이었습니다.


5. 농부의 무지함이 불러온 ‘풀과의 전쟁’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풀과의 전쟁은 결국 농부의 무지함에서 시작되고, 그 전쟁에서 농부는 항상 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요.

  • 멀칭의 존재를 모르다: 검은 비닐로 땅을 덮는 ‘멀칭’ 작업이 왜 필요한지조차 몰랐습니다. 그저 맨땅에 모종을 심으면 되는 줄 알았던 제 무지함 덕분에, 텃밭은 순식간에 풀들의 잔칫상이 되었습니다.
  • 패배를 인정하는 법: 뽑아도 뽑아도 다음 날이면 다시 고개를 드는 잡초들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자연의 생명력을 인간이 이기려 드는 것 자체가 오만이었다는 것을요. 멀칭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저는 비로소 자연과 공존하며 싸움을 줄이는 법을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김장김치용으로 기른 갓
김장김치용으로 기른 갓

6. 맺으며: 농사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첫해 텃밭 농사는 동사한 모종, 썩어버린 감자와 고추, 그리고 무성한 잡초만 남긴 채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자의 건강을 지켰고, 자연의 섭리를 배웠으며, 다음 해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삼막골의 흙은 제게 풍성한 수확 대신, 농부로서 가져야 할 겸손한 ‘마음’을 먼저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로써 삼막골 귀촌 준비와 정착기를 담은 10부작 연재를 마칩니다. 앞으로는 더 풍성한 삼막골의 일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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