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이기고 꽃을 피운 동백 이미지

“봄은 이렇게 시작된다” 2 [삼막골의 어느 날]

— 이름을 알게 된 순간, 풍경이 달라졌다

겨울이 끝났다는 것을
달력보다 먼저 알려주는 것은
언제나 땅이었다.

아직 바람은 차갑고
아침이면 서리가 내려 앉아 있지만
그 속에서도 조용히 고개를 드는 것들이 있다.

이름도 모르고 지나쳤던 풀들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때 비로소 봄은 시작된다.

올해는 유난히
그 작은 변화들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냉이 하나, 돌나물 한 줄기,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금씩 살아 움직이는 들판의 숨결까지.

나는 이제
그것들을 그냥 ‘풀’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산국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들국화다. 꽃은 작고 소박하지만 집에서 키우는 국화보다 훨씬 짙은 향기를 내어 준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그 향기를 알 수 없듯, 이 꽃도 조용히 다가온 사람에게만 자신을 내어준다. 냉이는 땅 가까이 붙어 자라고 돌나물은 돌틈에서도 살아남는다.


산마늘은 시간이 지나면 진한 향과 고유의 맛을 알려주고, 머위는 식탁 위로 올라온다. 달맞이 꽃은 지천으로 흩어지면서 세력을 확장하려 애쓴다.


구절초는 고요하게 피고, 금계국은 환하게 빛나며, 수레국화는 바람을 따라 흔들린다. 데이지는 흰꽃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려 하고, 고돌빼기는 건강한 쌉싸름한 맛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꽃다지는 늘 의젓하게 봄을 맞는다.


봄은
크게 오지 않는다.

눈 녹은 자리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작은 풀 하나로,
아무도 모르게 시작된다.

그래서인지
이 계절은 늘
조금은 천천히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름을 알고 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저 스쳐 지나가던 풍경이
이제는 이야기가 되었다.

올해의 봄은
이 작은 식물들과 함께
조금 더 오래 머물러 볼 생각이다.